이름 없는 추모제 – 그 애는 2017년 8월 1X일 새벽에 죽었습니다.

그 애는 2017년 8월 1X일 새벽에 죽었습니다.

 

나는 그 애가 웹하드에서 자신의 동영상을 발견한 후부터 자살하기까지 3개월간, 그 애가 거의 유일하게 만났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날 새벽에 더는 안 되겠다는 연락을 받고 경찰과 동행해 그 애 자취방의 문을 따고 들어갔던 사람입니다.

구급차 안에서 그 애 핸드폰으로 부모를 부르고 그 애가 숨이 끊어진 순간 병원에 있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애 장례식에 가지 않았습니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도 제대로 추모하고 애도한 적이 없습니다.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으니까요. 나는 이 자리에서 별로 정갈하게 그 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 죽음은 나에게 마음 정리가 채 다 되지 않은 일이고, 그런 일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하고 그 의미를 따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경찰도, 법조인도, 관련 업계 종사자도 아니고 그저 디지털성폭력 이슈에 조금 더 관심이 있는 편인 일반인입니다.

사실 그 애와 절친한 친구도 아니었습니다. 그 애는 경찰, 법조인, 관련 업계 종사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서

친하지도 않은 저에게 겨우 연락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 애가 알고 있던 세상에서는, 그 정도로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이해하고 지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애는 왜 그런 세상에서 살아야 했던 겁니까?

 

 

나도 그 애 장례식장에 가서 슬피 울고 추모를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경찰도, 법조인도,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일반인입니다.

그 전 3개월 동안 그 애 옆에 있어주고 지지하고 보조자가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제 일상은 충분히 망가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 애가 죽은 날 아침에 출근하고, 그 다음 날, 그 다다음 날도 출근을 해야하는 일반인이었습니다.

나는 힘에 부치게 했는데 뭐가 모자랐던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아니 사실 내가 모자랐던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는데,

그러면 결국 나는 어떻게 해야 했던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과호흡을 겪고 몇 번 쓰러지기도 하면서 우선 그 일로부터 거리를 두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비극 때문에 생업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까요. 개인 단위로는 감당할 수 없고, 개인의 일상이 망가질 만한 폭력을 왜 법과 행정이 맡지 않았던 겁니까?

 

 

마지막으로, 그 애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그 애는 처음 도움 요청을 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자기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볼까봐 불안증으로 덜덜 떨면서도 굳이 밖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 애가 죽던 날 새벽에야 그 이유를 알았는데, 그건 그 방이 그 애가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개월 전에 봤던 방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창문에는 깼다가 다시 테이프로 붙이고, 그걸 다시 깼다가 그 위에 또 테이프를 덧바른 흔적이 무수히 있었습니다.

 

책상, 의자, 침대, 노트북, 벽 등 방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부쉈다가 테이프를 발랐다가를 반복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 애는 매일매일 죽으려고 했다가 살아보려고 했다가 또 죽으려고 했다가 다시 살아보려고 하기를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애가 2017년 8월 1X일에 죽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애는 그해 5월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죽임당해서 그날 마지막 숨이 끊어졌을 뿐입니다.

 

 

살고 싶었던 그 애를 매일매일 죽이던 것들을 기억합니다.

 

‘맛있어 보인다’  ‘저런 XX를 입고 다니는 년들은 걸레더라’  ‘내가 본 국산 탑10에 든다’

‘X살 있어서 좋다’  ‘아니다 싫다’  ‘질질 싸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어느 학교 애다’  ‘그 학교 다니는데 찾아봐야겠다’

 

그 외에도 수천 개가 있지만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 이들은 이런 댓글을 달 수 있었던 겁니까? 누구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까?

왜 그 애를 죽이고 내 일상을 파괴하도록 방관했습니까?

 

 

오늘 이 자리는 디지털성폭력 피해자들의 추모제라고 알고 왔습니다.

어차피 늘 숱하게 일어나는 일,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새삼스러운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애의 이름을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오늘 XX이에게, 지금까지 너의 죽음을 어느 정도 회피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XX이의 명복을 빌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너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이들이

죗값을 받을 수 있도록 지금 이상으로 싸울 것임을 약속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월 30일, 이름 없는 추모제에서 낭독 혹은 대독될 글.
익명의 한사성 회원이 보내 주셨습니다.

 

눈물 흘리거나 추모할 틈도, 상처를 돌볼 시간도 없이

누구의 답장도 위로도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름이 있어도 부를 수 없는 피해자를 위해

우리 곁에 언제나 있었던 어떤 죽음을 위해

온라인 추모 페이지에 하고 싶은 말을 남겨 주세요. 추모제 당일날, 남겨진 목소리의 수 만큼 꽃을 놓아드립니다.

 

 

#이름 없는 추모제

온라인 추모 페이지 링크->
https://govcraft.org/campaigns/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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